[남도힐링명소] 무등산 자락 첫 동네…무심한 세월이 품어낸 고즈넉한 풍경들 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사랑방신문 공동기획 ⑫ 화순 이서면 영신마을
600여년 돌담과 옛 빨래터 등 고스란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 마사회 등 후원 오는 8일 문화·나눔축제
입력날짜 : 2013. 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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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자락의 첫 동네인 화순 이서면 영신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한 곳으로 600여년 고즈넉한 돌담과 옛 빨래터가 자리하고 있다. 눈이 소복이 내린 마을 뒤편의 무등산 규봉암을 병품 삼아 한 폭의 그림처럼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 | 울긋불긋한 단풍 위로 폭설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화순군 이서면 영신마을을 가다보면 흡사 드라이브 명소로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장엄한 무등산 국립공원을 휘감아 구불구불 돌아가는 도로 옆으로 설국의 장관이 펼쳐져 있다. 무념무상이다. 화사하게 꽃피는 철에도, 푸르름이 짙어가는 시기에도, 단풍이 절정인 때에도…, 아마도 사계절 내내 유혹의 손길을 뻗칠 것 같은 풍광을 한껏 자랑한다.
무등산의 255m 지점에 위치한 첫 동네는 하얀 눈 속에 가둬진, 한 폭의 그림처럼 신비로움이 더하고 있다. 주상절리에 둘러싸인 규봉암의 전망은 탄성을 지르게 한다. 완벽한 자연과의 조화로움에 감탄사가 터진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다.
주금숙 아름다운마을위원장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또 햇살이 들거나, 시시각각으로 놀라운 경관을 연출한다”며 “혼자 있어도 좋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 듣기에도 안성맞춤이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65가구 110여명이 거주하는 이 곳은 예술가들이 적잖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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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집, 길과 길 경계를 이루며 마을 전체에 형성돼 있는 돌담, 돌이 많은 무등산에서 가져와 축조한 것으로 무수한 세월동안 튼실히 자리잡았다.
| | 소가 드러누운 형상의 마을은 바람과 비와 햇볕에 자연스럽게 세월을 덧입고 있는 나무처럼 인위적이지 않아 매력적이다.
600년 전 무수히 이어진 돌담은 집과 집 사이 경계로, 길과 길 사이 경계로, 작은 밭 사이 경계를 이루며 제법 멋스럽다. 각기 다른 모양의 돌들이 나름의 질서로 튼실하게 자리를 틀고 있다.
돌이 많은 무등산 곳곳에서 손쉽게 구해 지금껏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층층이 쌓아 올린 고즈넉한 돌탑들도 눈에 띈다.
마을 위편에는 아낙네들이 모여 속내를 다 풀어놓았던 옛 빨래터가 자리한다. 마치 빨래감 두드리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해 발길을 뗄 수 없게 한다.
맑은 눈 같다 해서 설(雪)시암이라 불리는 이 곳은 식수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더불어 수량이 풍부한 만큼 논에 물을 댈 정도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에 이율곡 선생이 지나면서 마셔 보고 그 맛이 좋다해 ‘반천’이라 이름지었다는 일화도 있다.
마을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숲길, 탐방객들이 몰리는 무돌길과 연결돼 있다. 1960년대 건립된 진양 하씨 제각 뒤편으로 조성된 소나무(노송들) 군락은 보호수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기품있는 대나무 밭도 일품이다.
기축옥사에 휘말린 동암(東巖) 이발(李潑, 1544-1589) 선생의 5대손이 부지를 기증해 설립됐다는 이서초등학교는 한때 200명이 넘는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 때문에 당시 광주의 중학교로 진학한 이들은 장불재를 넘어야만 했다.
지금은 고작 7명만이 재학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특성화학교로 전환해 옛 영광을 재현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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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맑다 해서 이름붙은 설(雪)시암. 임진왜란 전 이율곡 선생이 이 곳을 지나면서 물맛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아낙네들의 빨래터로도 사용됐다.
| | 지명 유래를 보자. 영평리(永坪里)의 지명은 영신(永神) 마을의 영(永) 자와 유평(柳坪) 마을의 평(坪) 자를 각각 취해 붙였다. 영신사(靈神寺) 라는 절이 있어 영신(靈神)이라 했는데 후대에 한자가 간략화돼 영신(永神)으로 바뀌었다. 무등산의 신령님이 세우신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동쪽은 무등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도 무등산 자락으로 감싸여 있다. 남서쪽으로는 장복동을 거쳐 장불재를 넘어 광주로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규봉암에 오르는 길이 있다.
동남쪽으로 평야가 형성돼 있고 무등산에서 발원하는 영신천이 마을의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마을의 방향은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고려말에 진주 강씨가 입향해 설촌했다고 전해 온다.
이와 관련, 무등산 설화가 전한다. 태조 이성계는 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창업하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백세천년의 왕업이 이뤄지길 바라고 억울하게 죽은 고려 명신들의 영혼을 달래고자 팔도명산을 모두 찾아가 정성껏 삼일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오로지 이 무등산의 산신만이 거절하자 이 태조가 노해 등급이 없는 산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무등(無等) 이라고 불리워졌다.
영신마을은 (사)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연합이 꼽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7곳 중 1곳이다
‘슬로시티’가 자연을 닮아가는 도시. 즉 ‘자연형 도시’라면, ‘아름다운 마을’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세상에서 한 개 밖에 없는 뜻깊은 문화유산을 발굴해 관광 수익과도 연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오는 8일 처음 열리는 ‘영신마을 문화로 꽃피우다’는 주제의 축제도 그 연장선이다.
KRA(마사회)와 함께하는 농어촌희망재단, (사)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연합, 농협중앙회 등 후원으로 오전 11시부터 문화와 나눔마당으로 치러진다. 행사 주역은 김재식 이장을 비롯해 최길섭 노인회장, 이명숙 추진위원장, 주금숙 아름다운마을위원장이다.
마을문화공간에서 살풀이춤 및 대금과 해금 국악공연, 시낭송, ‘이발 선생과 영신마을’에 대한 소개가 있고, 특산품인 율무와 쑥을 이용한 찹쌀떡 만들기 체험, 다양한 먹거리도 곁들인다. 마을길 해설과 더불어 마을회관-설시암-소나무숲길 등 소원 걷기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특히, 유서 깊은 돌담과 빨래터 등 문화콘텐츠의 스토리텔링화를 비롯해 마을의 발전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도 마련돼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정 마을은 시골의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떠나온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달려가고 싶도록 이끈다. 무등산의 따뜻한 기운이 마을 어귀까지 내려오는 이 곳, 버선발로 마중 나오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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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에 휘말린 이 고장의 이 발 선생 후손의 도움으로 설립된 이서초등학교, 한때 200여명이 넘는 영화를 누렸다. | | ■ 이름만 전하는 용소(龍沼)
마을에는 무등산과 못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400여년 전 초여름, 광풍과 더불어 소낙비가 몰아쳐 농부들이 일손을 놓고 비를 피해 앉아있는데 구름 속에서 하얀 백룡이 꼬리를 치며 못으로 내려왔다.
백룡은 물을 타고 상하로 꼬리를 치며 노니 신기하게도 부근에 있는 개구리와 자라들 수 백마리가 조회나 하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용신제(龍神祭)를 지내기 시작했고, 풍년이 들었다.
그 뒤 풍류를 즐기는 동복현감이 애첩 비연(飛鳶) 이란 기생을 데리고 규봉암으로 소풍을 가다가 쉴 곳을 찾다 못에 다다랐다. 연석을 만들어 흥겹게 노는데 기생들도 석양노을에 취흥이 진진해 춤을 추며 여흥을 즐겼다.
이때 술기운이 오른 현감이 높은 바위에서 칼춤을 추도록 했고, 흥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비연이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켜 칼을 쥔 채 못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물속의 백룡이 갑자기 꼬리를 치며 노하기 시작했고 일행은 혼비백산했다.
뒷날 사람들이 찾아가보니 백룡은 온 데 간 데 없고 맑은 물은 흙탕물이 돼 비연의 시체만 떠 있었다. 이후 가뭄이 들어 농사짓기가 어렵게 되면 기우제를 지냈으며 하늘에서 비를 주었다. 그때부터 이 못은 용소(龍沼)라고 전해진다.
/글·사진 김종민 기자 kim777@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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