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DJ가 남기고 간 가치

미진수 2009. 8. 26. 08:02

DJ가 남기고 간 가치
기사입력: 09-08-25 16:21  |  조회: 157  
지도자로서 이뤄낸 자유, 그 가장 큰 이념적 줄기는 ‘시장 경제’


지난 18일 김대중 전(前) 대통령이 서거했다. 납치, 수감, 사형선고, 대통령 취임, 노벨상 수상 등 그 어느 정치인보다도 극명한 명암이 교차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대통령. 그는 이제 역사 속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업적과 실패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고 이뤄냈던 ‘자유’와 ‘화합’의 가치는 우리에게 큰 의미로 남았다. 그가 남기고 간 가치는 우리 모두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한 후배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시사점을 던져 줄 것인가? 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의 칼럼을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김대중 대통령, 한민족의 역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한 거목이 사라졌다.
DJ가 남긴 업적, 그리고 그 공과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큰 인물이 후세에 남기는 가장 큰 족적은 그가 추구했던 개별 과제의 성공, 실패라기 보다는 그가 추구했던 ‘가치’다. DJ를 제대로 기리는 방법은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제대로 규명하여 그것을 기리는 것이다. 역사는 가치를 통해 발전하기 때문이다.
 
DJ가 추구했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유’와 ‘화합’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대별된다고 생각한다.
 
화합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남북 화합, 동서 화합 등, DJ는 우리 민족이 하나 되는 것에 헌신했다. 어쩌다 보니 역사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호남 사람들. 그들에 대한 망국적이고 잔인했던 차별은 이 땅을 분노와 편견으로 가득 찬 땅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DJ가 없었다면 그 분노와 편견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호남 사람에 대한 편견과 맞서 싸우며 대선에 승리함으로써 영•호남간 동-서 화합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그는 재임 중 남-북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개척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통합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동-서와 남-북의 화합을 향한 노력은 반드시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우리 민족을- 동서와 남북 모두- 진정으로 하나게끔 하는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 기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특히 DJ가 ‘자유’라는 가치를 열렬히 추구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가치는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특별히 의미가 있고 계속 우리 민족의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DJ가 정치적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와 김영삼 전대통령을 비롯한 민주 지도자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훨씬 더 오래 독재의 손아귀에서 신음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DJ가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열심히 추구해 온 지도자였다는 사실이다. 1992년 12월 20일 아침 대통령 당선자로서 그가 내 놓은 제 1성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를 했을 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소 고개를 갸우뚱 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반독재 투쟁가였던 정치인 김대중의 입에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주의자인 그의 입에서 당선 제 1성으로 ‘시장 경제’라는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라는 것은 한 마디로 ‘경제적 자유’가 만발하는 시스템을 이야기 한다.

‘시장’의 본질은 ‘자유’다. 그러나 진보는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주의자의 지상 가치는 자유가 아니라 ‘평등’이 아니던가? 소위 진보의 고수라고 여겨져 온 DJ가 대통령 당선 제 1성으로 ‘시장 경제’를 부르짖었다는 것은 그래서 뜻밖이었던 것이다.

DJ는 이를 말로 부르짖었을 뿐 아니라 사실 대통령 재임 중 이를 실천하려고 줄기찬 노력을 했다. 무엇보다 그의 재임 중 한국의 ‘세계화’가 가장 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시장 경제와 ‘세계화’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고 세계화가 없는 시장 경제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DJ는 과감하게 외국인 투자에 대해 문을 열었다. 1998년 1년 동안에 들어 온 외국인 투자가 해방 후 50년 동안의 외국인 투자를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금융 자율화는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DJ 임기 말 쯤에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아세아에서 가장 건전하고 자율적인 것 중의 하나로 평가 되었다. 물론 IMF 경제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이 있었고 외세의 압력도 있었다. 2001년 IMF를 졸업하고 나서도 몇몇 문제는 남아 있었지만 이러한 자유화의 흐름이 계속 되었다는 사실은 DJ의 의지를 읽게 해 준다.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한국 경제는 사실 그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이 자율화되고 한국이 더 개방화되면서 한국 경제는 훨씬 더 시장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로 변모했다. 물론 상당한 부작용도 있었지만 벤처열풍이 불면서 젊은 벤처 사업가들이 불어 넣는 역동성에 의해 한국 경제는 옛 재벌 중심 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활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는 ‘시장 경제’를 추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나라의 떡을 키우는 것은 ‘시장 경제’라는 것이고 그것에는 진보나 보수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DJ는 우리나라 어떤 정치인보다 어떤 면에서는 가난한 서민에 대한 배려가 강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시장경제와 대외 개방을 그토록 강하게 추구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라는 진리를 웅변적으로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장경제가 떡을 가장 잘 키우고 결국 떡이 가장 클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 갈 몫이 가장 커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해 주고 있을 뿐이다.

영국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블레어 수상, 역사상 최장 호황을 이끌어 내었던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모두 진보 정당 소속들이다. 그들이 하나 같이 ‘시장’의 원리를 가장 소중한 원칙으로 삼고 경제를 운용했고 또 그를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금융권의 대 수술 과정에서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경제 회복의 성공을 크게 돕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DJ의 이념과 법통을 잊겠다고 자처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그들이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유업으로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념적 줄기는 바로 ‘경제적 자유’, 즉 ‘시장 경제’라는 사실이다.

전성철 IGM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