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김소연
김소연, 「마음사전」
동정 : 연민 /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여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느낀다면,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 요컨대 동정은 이질감을 은연중에 과시한다면 연민은 동질감을 사무치게 형상화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동정한다면 우리는 119 구조대를 부를 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연민한다면 우리는 팔을 뻗어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동정은 오직 사랑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망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연민은 사랑의 형식을 망가뜨릴지라도 내용을 채우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반하다 / ‘반하다’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혹 / ‘홀림’이 근거를 찾아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갖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다시 감정은 복원된다.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거나 매혹으로 인해 포만감을 느껴본 이후라면, 홀연히 매혹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매혹에의 경험이, 가슴에서 반짝이는 자랑스런 금색 훈장과도 같다.
망각 /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이별 후에도, 목숨을 버리고 싶은 이별 후에도, 우리는 살겠노라 호흡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한다. 웃기면 웃고, 가려우면 긁고, 다리가 저리면 고쳐 앉는다. 그 속에서 그럴 듯한 망각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지만, 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가역(可逆) 작용은 불완전하다.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통증과 환희, 쾌감과 분노 따위가 느껴지지 않을 뿐, 즉, 그 자리가 상처가 아닐 뿐, 흉터로서 남는다. 사랑하는 동안 급하게 흘러갔던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무능하게 바라보면서, 시간의 완급을 수십 번 되풀이하여 바라보면서, 흉터가 비로소 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망각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