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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함석헌

미진수 2012. 11. 29. 08:41

< 삶·죽음 >  
                                                       
                                                          함석헌


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퍼져나가는 가지같이 그칠 줄 모르는 삶의 음악을
손에, 발에, 소리에, 얼굴에 넘쳐흐르게 하는 일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한 맘을 묶어
정성껏 바친 한 사람을 위해 맘껏 일하다가
힘껏 싸워 죽을 수 있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보다도 흘러가는 세상 물결 속에
흐르지 않는 사업을 쌓아
바위 위에 서서 죽는 등대지기같이
그 위에 서서 죽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보다도
또 영원히 실현될 길 없는 이상의 맑은 불꽃을 안고
새파란 나래째 부나비 되어
그 안에 뛰어들어 타죽고 만다면
그것은 그것은 얼마나 눈물[이] 나는 일인가?

즐거움, 아름다움, 행복, 영광을 다 모르고
[나도, 세상도, 온 길도, 앞날도 다 볼 줄을 모르고]
그저 타, 타, 타, 영원한 불길로 타오르고만 마는
그 일은 [아]아, 그 일은 얼마나 눈물나게 거룩한 일인가?

 

 

< 풀이 >
먼저 삶의 벅찬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퍼져나가는 나뭇가지 같이 그칠 줄 모르는 삶의 즐거운 음악을 손과 발에 소리에 얼굴에 넘쳐흐르게 하는 일은 얼마나 기쁘고 아름다운 일인가? 함석헌은 삶의 즐거운 기쁨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경험하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았다. 삶을 참으로 삶답게 하고 아름답고 보람 있게 하는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 마음을 하나로 묶어 정성껏 한 사람에게 바치고 그 사람을 위해 맘껏 일하다가 힘껏 싸워 죽을 수 있다면 더욱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다.

인생은 생이 풍성해지고 마음이 깊고 빛나게 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사람이 나고 죽고, 죽고 나면서 삶과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 하면서 생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생이 풍성하고 마음이 깊고 빛나게 하자는 것이다. 생이 풍성하려면 마음이 깊고 빛나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은 마음이 깊고 빛나는 데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 빛나게 하는 일은 흘러가는 세상 물결 속에 흐르지 않는 사업이다. 이것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가지 말고 세월을 거슬러 이루어야 할 일이다. 시간의 강물에 떠밀려가지 않는 바위 같은 정신과 인격 위에 서서 등대지기처럼 세상의 어둔 마음을 밝히며 홀로 죽는 사람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러나 정말 거룩한 일은 등대지기처럼 홀로 어둔 세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의 맑은 불꽃에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다. 자신을 불태워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일은 없다. 인생의 즐거움, 아름다움, 행복, 영광을 다 모르고 그저 자신의 몸과 맘과 생각과 뜻을 불태우는 일은 무엇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다. 자신의 목숨과 마음과 뜻을 불태워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어둔 세상을 밝히고 마음을 깊고 환하게 하여 나와 너를 함께 구원하는 일이다. 자신을 불태워 제사 지낼 때 마음은 더없이 깊고 밝아지며,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뜻이 밝아지고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힘이 드러난다.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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